우리 (창 43:22)

(창 43:22)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요셉의 형들은 두 번째 요셉을 만난다.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극진한 환대와 식대 대접에 오해를 한다.
자신들을 억류하여 노예로 삼으려는 계획으로 오해한다.
그들은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생각한다.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을 안내하는 청지기에게 설명을 한다.
지난 번 곡식을 사러 왔을 때 곡식 자루에 돈이 그대로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돈은 누구도 훔치지 않고, 그냥 돈 자루에 들어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을 하면서 요셉의 형들은 철저하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청지기에게 자신의 의견을 대변한 사람이 있을텐데 성경은 ‘그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철저하게 어떤 개인이 아니라 요셉의 형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행동한다.

애굽에서 다같이 돌아오려면 똘똘 뭉쳐야 산다 생각했을까?
형제간의 갈등이 해결되고 하나의 공동체로 회복된 것일까?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앞을 다투어 말하는 환경을 보고 성경의 저자가 선택한 표현일까?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들은 개인을 넘어 가족 공동체가 되었다.
서로를 위하고, 대신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가족 공동체로 회복해 간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이다.
고난 속에서 자신들이 행한 일을 돌아보고, 다시 한 가족임을 확인하며 운명공동체로서 한 믿음 아래 서 있기를 원한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공동체의 건강함이 드러난다고 한다.
건강할수록 위기의 순간에 더욱 똘똘 뭉친다.
만약 외면하는 사이라면 겉 모습만 공동체일 뿐이다.
참된 공동체는 운명공동체이다.
생사를 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하나의 생명으로 뭉친, 형성된 공동체이다.
가족공동체를 더욱 견고히 세우길 소망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대입수능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아보며 격려한다.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