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눅 4:22)

(눅 4: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사역을 시작하셨다.
회당에서 이사야 말씀을 읽고 풀어 설명해 주셨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란다.
은혜로운 말을 듣고 놀랍게 여긴다.
그런데 그들은 반문한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이 반문 속에는 “우리들과 함께 자랐던 그 예수가 아니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너무 잘 안다는 것이다.
같이 자랐기 때문에 잘 안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앎은 피상적인 앎이다.
예수님이 진짜 누구인줄 모른다.
겉으로 보고 경험한 것만 알고 있다.

경험의 함정이다.
우리들의 경험한 것을 근거로 지식을 갖을 수 있다.
그런데 경험한 것이 지식의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경험 밖의 지식도 많다.
오히려 신앙은 경험 너머에 있다.

또한 익숙함이 그들에게 함정이 되었다.
익숙하기에 새로운 것을 생각 못한다.
회당에서 말씀을 풀어 설명해 줄 때 이미 익숙함을 넘어섰다.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익숙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 하신다.(24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피상적 지식과 경험과 익숙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님은 우리들이 우리들의 기준을 내려놓기 원하신다.
피상적 지식과 경험과 익숙함이 결코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믿음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은혜로운 말씀이라도 감정에 멈추면 안 된다.
놀랍게 여기는 것은 감정적 반응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감정에 따르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은혜로운 말씀을 내 삶에 받아들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는 것이다.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행함이 뒤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놀라는 데에 멈추지 않기를 소망한다.
은혜 받은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며, 그 말씀대로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