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일치하게 사양하여(눅 14:18)

(눅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했다.
그런데 청한 사람들이 다 일치하게 거절한다.
정중하게, 예의 바르게 거절한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엄밀하게 생각하면 이유라기 보다는 핑계였다.
잔치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영적 욕구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영적 욕구자체가 살아나지 않는다.
큰 잔치를 준비하고 초청을 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영적 미각이 무뎌져 있는 확실한 증거이다.
피할 길을 찾는다.
이미 초청장을 보냈고, 시간은 다 되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정중하게 거절할 핑계거리를 찾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단합대회라도 한 것처럼 거절한다.
그들의 공통적인 이유는 세 가지이다.
밭은 샀고, 소를 시험해 보아야 하고, 장가를 가서….
이런 이유들은 우리들의 일상이다.

밭을 산 것은 재물을 얻은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재물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재물을 모으기 위해 분주한 삶을 산다.
재물 때문에 잔치 초청을 거절하고 있다.

소를 사서 시험해 보야 하기에 거절한다.
소는 밭을 갈고 농사의 일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에 필요하다.
소를 시험해 본다는 것은 호흡을 맞춰 본다는 것이다.
길 들이는 과정이다.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잔치 초청을 거절한다.

장가를 가서 거절한다.
결혼은 인생의 매우 중요한 전환기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잔치 초청을 거절한 것이다.

재물, 먹거리,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필요 때문에 하늘 잔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이다.
이 땅의 필요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이 땅의 필요와 하늘의 필요가 충돌할 때
하늘의 필요를 선택해야 한다.
당장 눈에 안 보여도 영원을 결정하는 길이다.
무뎌진 영적 감각을 되살아나고
우리의 관심사가 이 땅에서 하늘로 옮겨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