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의 은혜 (삼하 16:12)

(삼하 16: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인정한다.
아들도 반역하고 내 생명을 해하려 하는데
베냐민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에게 다가온 고난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도망하면서
다윗은 ‘혹시’의 은혜를 기대한다.
‘혹시’ 하나님이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고
오늘 그 저주 때문에
내게 선으로 갚아 줄 것이라 고백한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한 내가 넘어짐으로 고난을 겪는 일은 당연하다.
다윗의 고백처럼 때로 원통한 일을 만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혹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내게 선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하나님은 순간마다 빈틈없이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아신다.
자주 실수하고 넘어지고 허물많은 존재이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한 눈빛으로
살피신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은혜이다.
사랑이다.
복 중의 복이다.
다윗은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혹시’의 은혜를 구한다.

‘은혜’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내가 마땅히 요구하여 얻어내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내 노력의 결과물이 되어버린다.
다윗이 하나님께 ‘혹시’의 은혜를 구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런 뜻이다.
내 생각과 내 판단대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맡기는 태도이다.

하나님은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밀한 눈빛으로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드리고
순간마다 하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망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뜻을 내가 다 알지 못하지만
오늘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당신의 뜻을 따라
‘혹시’의 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