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1-7, 인생을 돌아보시는 하나님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당했을 때에 지은 시
(삼상 23: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이 말은 ‘독안에 든 쥐’라는 말이다.
그럴 경우 그의 신복들은 급히 피신할 것을 권유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1절에서 그것을 거절한다.
(시 11: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하나님의 산’이 아니라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을 잘 보아야 한다.
이럴 때 사람의 마음은 요동하기 쉽다.

시편에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새에 비유한 표현이 많다.
(시 102:6)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시 102: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그래서 도망할 때 새 같이 도망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분명히 다윗은 신하들에게 유혹을 받은 것이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피하였지만 현실은 독안에 든 쥐처럼 앞이 막막한 때가 있다.
이럴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 내가 만든 산으로 도망할 수 있다.
이때가 위험한 때이다. 조심해야 한다.

주님도 이런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간절히 ‘그리 마옵소서’라고 요청했다. 그때 주님은 단호하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마 16:22ff

항상 마음의 중심을 흩트리지 않고 계셨기에 주님은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2절을 영상으로 떠올려 보자.
(시 11: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이런 환경이라면 성도는 어떻게 해야 마땅한가?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께 피했다’고 고백한다.
피하였다는 것은 의뢰하고 의지함을 말한다.

다윗의 신복들은 거듭 도망할 것은 촉구한다.
(시 11: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터가 무너졌다는 것은 공의가 무너지고 악이 득세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들이 붙잡아야 할 대상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다윗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만을 의지했다.

다윗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고 계심을 믿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의인을 감찰하심을 분명하게 고백한다.

(시 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시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이것이 시 11편의 핵심이다.
이사야도 국가적 어려움의 시기에 하나님을 보았다.
(사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데반 역시 순교의 순간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악인의 종말과 의인의 종말이 대조된다.
(시 11: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듯 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을 의미한다.
현재 당면한 고난 너머로 장차 누릴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의 힘든 과정들이 끝나고 우리들이 이젠 영광 가운데 누리게 될 때가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