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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행의 차 이야기 ② 玄酒와 군자차] 宴會 시작과 끝 알린 ‘맹물차’
술·차맛의 근원은 물이라는 믿음에서 기원
이규행_언론인·국학연구소 이사

옛날 중국의 상류사회에서는 주연(酒宴)을 베풀 때 반드시 냉수부터 마셨다고 한다. 만약 주빈이 손님에게 먼저 냉수 한 잔을 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모욕을 주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기록에 보면 야인(野人)에게는 술부터 권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야인이란 우리말로 ‘상것’ 또는 ‘오랑캐’를 일컫는다.

이런 주법(酒法)은 황실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황제가 신하에게 만찬을 베풀 때 먼저 내리는 것이 현주(玄酒)였기 때문이다. 현주는 언뜻 술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실은 청수(淸水), 즉 맑은 물을 뜻하는 말이다. 현주는 술의 근원이 물임을 강조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황제가 연회에서 물부터 마시게 한 까닭은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는 황제 앞에서 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도록 술 깸을 미리 다짐하는 것이고, 둘째는 술의 근원이 물임을 일깨우는 뜻이라고 한다. 특히 후자의 풀이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철학을 주법에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음수사원이란 물을 마실 때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의 사자성구(四字成句)다. 황제가 음수사원을 강조하면서 현주를 내리는 본심은 다름 아닌 ‘충성’에 있음을 말하는 셈이다. 아무튼 술의 근원이 물이라는 생각의 틀은 동서와 고금에 변함이 없다. 물맛에 따라 술맛이 좌우되는 이치는 술과 물의 관계를 웅변해 주고도 남는다.

물맛에 따라 맛이 좌우되는 이치는 술뿐만이 아니다. 차맛도 그렇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차맛은 술보다 훨씬 더 물맛의 영향을 받는다. 같은 찻잎이라도 물맛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변하는 것을 차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했고 익히 아는 일이다.

중국 상류사회의 주연 끝에는 반드시 차가 베풀어진다. 이때 보통 차는 예법뿐만 아니라 격에도 맞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오룡차(烏龍茶)를 대접하면 무난하고, 그 웃질의 경우는 보이차를 대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룡차는 원래 발음을 좇아 우롱차라고 하는데, 반발효차(半醱酵茶)의 대명사처럼 통용된다. 요즘 우롱차라고 하면 으레 대만산을 꼽는데, 전통적으로 푸젠성(福建省)의 우롱차를 으뜸으로 여겼다. 지금도 최고의 명차 급에 속하는 우롱차는 푸젠성의 무이산(武夷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지칭된다. 예컨대 ‘무이암차(武夷岩茶)’나 ‘대홍포(大紅布)’가 그 대표 격이다.

그러나 중국 차시장에 가 보면 무이암차라든가 대홍포라는 이름의 차를 무수히 볼 수 있다. 이것을 모두 진짜 무이암차 또는 대홍포로 여겼다가는 낭패 보기 일쑤다. 진짜 무이암차나 대홍포는 믿을 수 있는 상인이나 경로를 통해야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롱차가 반발효차인 데 비해 보이차는 후발효차(後醱酵茶)다. 보이차는 우롱차와 달리 발효 과정이 길고 누룩균에 의한 발효차라는 특징을 지닌다. 우롱차는 그해에 산출된 찻잎으로 만들어 마시는 데 비해 보이차는 당해연도의 것은 마실 수도 없고, 마시지도 않는다. 와인이 오랜 기간의 숙성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보이차도 오랜 기간의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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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 있는 보이차로는 ‘7542’나 ‘8582’ 등이 손꼽힌다. 와인의 연도 표시처럼 보이차에도 연도 표시가 있는데, 7542는 1975년에 만든 것이고 8582는 1985년에 만든 것을 나타낸다. 연도 뒤에 붙인 숫자는 찻잎의 등급과 제조공장을 표시하는 것이다.

상류사회 연회의 끝 무렵에 나오는 차의 마지막 한 잔은 ‘군자차(君子茶)’다. 군자차는 청수를 끓인 맹물을 일컫는 말이다. 차를 마신 뒤 군자차를 마시면 차의 진짜 맛을 알 수 있게 된다. 좋은 요리와 좋은 차의 뒤풀이로 군자차를 마셨던 옛사람의 슬기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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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맹물을 군자차라고 이름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자란 모름지기 깨끗한 물처럼 되어야 한다는 도덕률을 일깨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주로 시작해 군자차로 끝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파티 격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