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6, 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200(달고 오묘한 그 말씀), 195(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단어의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그 단어를 통해 사상을 정리하는 출발점입니다.
‘믿음, 의, 사랑, 천국’ 등 매우 중요한 성경의 개념은 그 안에 엄청난 사상을 담고 있는 소우주와 같습니다. 따라서 그 대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사상을 어떻게 전개할지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복’도 그와 같은 단어입니다. 복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할 때 우리가 쓰는 복의 개념으로 성경의 복의 개념을 이해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시편으로 들어가는 대문에 해당하는 1편에서 ‘복’에 대해 말합니다. 복은 시편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전체가 복된 사람을 누리는 비결을 가르쳐 준다.
본문은 복된 삶을 하나의 여행, 삶의 여정으로 표현한다. ‘길’이라는 은유는 이 여행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즉, 삶이란 여행과도 같다. 다양한 여정을 결정해야 한다.
여행을 하기 전 반드시 행로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이 땅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이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여행이 있다.
‘1) 세상에서의 여행’과 ‘2) 영원을 향하는 여행’이다.
세상의 여행은 1) 지나가 버리고, 2)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다시 여행길을 잡아 가면 된다.
그러나 영적 여행은 조건이 다르다.
1) 결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영생 아니면 영벌이다.
2) 하나 더 기억할 것은 중간 지대는 없다. 회색지대에서 고민하지 말라. 분명한 선택만이 기다린다,
영적 여행에는 서로 다른 여정이 있다.
본문에는 소개되는 두 개의 길은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선택이 중요하다. 행복을 원한다면 바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진정한 복은 어떻게 얻으며,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1. 말씀묵상에서 옵니다.
복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단지 말씀을 배우거나 명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①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만이 참된 복의 근원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②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도록 생각을 바꾸고 손발을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①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②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③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립지대란 없습니다. 죄인과 의인, 복 있는 자와 악인 사이에 우리가 걸쳐있을 곳은 없습니다.
복 없는 자는 악인이며, 죄인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가 복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온갖 특권이 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고 싶지 않은데 복은 누리고 싶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이 주는 복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착각입니다. 그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 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진정한 복이 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복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묵상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늘의 복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깊은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참된 복을 누리는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2. 형통함으로 옵니다.
복 있는 자는 철따라 열매를 맺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습니다. 반면에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깊이 뿌리를 내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시냇가 옆에 든든히 서 있는 나무와 잔 바람에도 온 데 간 데 없이 날아가는 겨, 얼마나 극단적인 대조입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 동산에 수로가 열려 언제든지 마르지 않는 물이 제공되는 과수원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린 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을 따라 주님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덧입고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심 없이 시류에 휩쓸리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주는 생명력, 생동감, 안정감과 껍질뿐인 죽은 겨가 주는 무상함, 무가치함, 유한함을 비교해 보십시오.
복 있는 자와 악인의 비교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3. 여호와께서 인정하십니다.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둘의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입니다. 심지어 악인이 의인보다 더 형통하고 더 많은 복을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의인들의 길은 인정하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으로 가게 하십니다.
진정한 복은 이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힘 있는 자들 곁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하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복을 사모하면서 오늘도 그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묵상이라는 단어(하가)는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을 설명하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절) 사용된다. 혹은 시편 63편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6절)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31:4에서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 거릴 때에~ 에서 ‘으르릉거리다’라는 단어에 ‘하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즉 사자가 자신의 소중한 뼈다귀 먹이를 가지고 그렁그렁 거리며 기쁨에 겨워 신음하는 소리다. 뼈다귀 하나를 입에 물고 너무 기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면서 하루 온종일 매달리는 모습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지칭할 때 바로 ‘하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영적 독서에 몰입되어 푹 빠져 있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취하는 것이다.
묵상은 읽은 말씀이 혈관을 타고 몸 전체로 퍼져서 온몸으로 말씀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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