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묵상❹,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는 사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계모, 의붓 아버지들의 만행들이다.
생후 28개월 된 아이를 죽인 이유가 게임중독 아버지가 게임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자지 않아서 죽였다는 것이다.
가슴아픈 현실이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도 아버지가 아들을 버린 사건이 나온다.
십자가 사건이다.
우리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죄를 미워하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죄를 짊어지게 하고 버리신 것이다.
아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고백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이다.
삼위의 하나님, 창조 때부터 공동체로 하나이신 삼위의 하나님이시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는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그러니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하신 네 번쩨 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 사건이다.
복음 중의 복음이다.
❶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데 아들을 버리시기까지 미워하신다.
죄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죄를 면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보응하신다.(출34:7)
❷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사 59:1-2)
죄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죽음만이 죄를 해결 수 있다.
❸우리 죄를 아들 예수님의 어깨에 대신 짊어지게 하셨다.
우리는 다 양같아 제 길로 간다.
매일 죄에 대한 경고를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길을 간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의 어깨에 죄를 지우신 것이다.
인간으로 죄없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해결할 수 있기에 유일한 방법이었다.
❹죄의 저주를 주님이 담당하셨다.
우리 죄를 옮기실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갈라디아 3장 1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고 하였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는 말씀대로 우리들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의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❺아버지의 아들을 버리심은 우리 죄 때문이다.
죄 없으신 주님이 죄인 취급을 당하신 것은 우리들의 죄 때문이다.
죄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짊어지심으로 죄인이 되신 것이다.
❻주님이 버림받으심으로 우리들에게 소망의 길이 열렸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우리 죄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이다.
대신 버림받고 우리들은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게 되었다.
❼단절의 고통을 겪으신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살리심으로 부자관계가 다시 회복되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죽어 무덤에 썩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다시 살리셨다.
아들과 아버지의 끈이 다시 연결된 것이다.
❽예수님은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책임지신다.
자기 사람들, 주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요13:1)
주님은 우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신다.
거처가 예비되면 분명히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
이유는 우리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결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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