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열쇠 (눅 11:52)

(눅 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에서 중심은 율법과 성전이었다.
성전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전개되었다.
모든 일의 중심이 성전이었다.
성전에서는 제사장의 인도를 따라 제사를 드리면 되었다.
율법은 그들의 삶의 원리였다.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사람들과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일상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그래서 율법을 잘 이해하고
율법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그들의 구원과 직접 연관된 것이었다.
이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율법사이다.
율법사는 말 그대로 율법을 풀어 설명해 주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그리고 생활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주는 역할이다.
율법사들이 율법의 어떻게 설명해 주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율법사를 가리켜서
주님은 지식의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라 하였다.
‘열쇠’는 문을 열고 닫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열고 닫을 권한을 가졌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율법을 잘 이해하고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율법을 이해하고 율법의 삶을 살기 위해
율법사들의 해석과 인도는 마치 문을 열고 닫는 열쇠 역할과 같다는 뜻이다.

문제는 주님이 보시기에 율법사들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율법을 잘 이해하도록 설명해야 하는데 왜곡시키고 있었다.
율법의 정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않았다.
온 마음을 다해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중심, 속 마음은 빠지고 겉 모습으로만 율법을 지키게 하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율법사 자신들은 지키지 않은 것이다.
주님은 삶으로 본을 보이며 믿음의 길을 가르쳐 주셨다.
율법사들도 설명한 율법대로 살면서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이 문을 막아서서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막는다 책망하신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없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밝히 눈을 떠서 진리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성령의 조명하심이 필요하다.
우리들이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의 조명을 구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깨달은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말씀대로 살기 어려운 시대이다.
언제가 곁에서 틈을 엿보는 사탄의 강력한 공격과
우리 내면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죄성이 우리를 흔든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주님께 무릎을 꿇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생활 중에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성령의 조명과 도우심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