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음과 덧입음 (고후 5:4)

(고후 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장막 가운데 사는 일은 흥미진진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약이 있다.
평생 동고동락하는 몸이다.
때론 힘들어 주저앉게도 하고
기뻐 힘 있게 일어서게도 한다.
몸의 상태에 따라 기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육체의 이런 제한성 때문에 짐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짐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짊어지고 가는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히 벗어버리기만 원치 않는다.
덧입음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
육체의 연약함과 제한성 때문에 탄식만 하지 않는다.
연약하기에 덧입기를 원한다.

성도는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입는 소망을 가지고 산다.
벗는다는 것은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의 장막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육체를 벗어버리려는 마음에는
영혼은 불멸하며 중요하지만
육체는 하찮은 것이며 사라질 것이라
무시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성도는 육체를 벗어버리기만 소망하지 않는다.
연약하며 제한적인 육체이지만
썩어질 것이고 사라질 것이지만
이 육체에 생명을 덧입고,
부활의 몸으로 덧입기를 소망한다.
성도의 소망은 벗음이 아니라 덧입음이다.

‘덧입음’으로 생명에 삼키게 된다.
죽음을 넘어 영생의 삶을 소망한다.
영원히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이다.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벗어버림 보다 덧입음을 소망한다.
하늘의 신령한 은사들로 덧입혀지고
영생의 몸으로 덧입혀져
이땅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소망한다.
사탄의 공격에 무서워하지 않고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