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팔십 세 (삼하 19: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삼하 19:35)

피난 중 다윗을 정성껏 섬긴 바르실래의 말이다.
왕은 바르실래의 섬김을 기억한다.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길 원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선한 섬김을 보상하려 한 것이다.
그 때 바르실래는 정중히 사양을 한다.
사양의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나이가 팔십 세라는 것이다.
매우 늙었다는 답이다.
이제는 왕께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만 될 것이라는 답이다.
음식 맛도 분별이 잘 안 되고
사람들의 소리도 잘 듣지 못하고
생명의 날도 얼마 길지 않을 것이기에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기를 원한다.
대신 자신의 아들 김함만 데려가길 원한다.

나이가 들어도 노욕이 남아 있다 한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정확하게 자신을 바라본다.
멈춰 서야 할 때 내려놓을 줄 알았다.
모든 노욕을 기꺼이 포기한다.
다윗왕의 제안은 좋은 기회였다.
남은 생애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소박한 소망을 아뢴다.
고향에서 남은 생을 살다 조용히 떠나고 싶어 한다.

자신의 행동에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보상에 대한 제안을 오히려 포기한다.
자신이 섬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섬김으로 만족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서도 만족한다.
왕과 함께 가서 인정받고 대접받는 길을 포기한다.

자신의 현재 상황으로 만족하는 삶이 중요하다.
불만족이 삶을 힘들게 만들고 지치게 한다.
원망과 불평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만족하는 마음은 감사를 낳는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자족하는 마음이다.
어떤 상황에도 처할 수 있는 마음이다.
마지못해 맞이하는 마음이 아니다.
기꺼이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다.

나이가 얼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 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이 주신 것을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보상을 기대하고 섬기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눌 수 있는 힘을 주심에 감사하고
기꺼이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눔을 통해 눈에 보이는 물질을 줄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는 더욱 풍성해 질 것이다.